터틀 크림이 만들어지기 전에 만들었던 아이리스 때부터,
그리고 공개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3D 슈팅게임 프로젝트도,
터틀 크림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선보인 찢어붙이기에 이르기까지,

저는 지금껏 유저가 좋아하는 게임이 아닌, '제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찢어붙이기를 진행하고 있는 내내 pig-min agnecy 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죠. 흑. 저는 지금껏 유저의 편의 보다는 저의 의도를 생각했고, 게임의 재미보다는 저 자신의 표현에 신경썼습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찢어붙이기, 재미 없다.' 라는 평을 찾게 되면 혼자 울컥 하기도 했고요.

이전에 썼던 글들에서 몇번이나 언급했듯이 저는 게임으로써 예술을 하고 싶습니다. 본디 예술이란 자신의 세계를 꺼내놓는 행위 입니다. 자신 안에서의 처절한 고민과 이를 연료삼아 타오르는 열정의 소산이 바로 예술입니다. 이렇게 게임을 예술을 보듯 바라보는 저에게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는 것은 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이 플레이 하기 위해서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술로써의 게임은 플레이로 일컬어지는 다른 이들과의 소통으로써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껏 저는 제가 가지고 놀 신기한 장난감 정도를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다른 스튜디오와 비교했을 때, 터틀 크림의 색깔은 새로움과 참신함 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터틀 크림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게임들은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게임'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사람도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이제 막 개발을 시작하게 되는 'Sugar Cube (가제)'가 그 첫걸음이 될 겁니다.


2010/03/02 20:56 2010/03/02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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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밝은해 2010/03/04 06:43

    예술이 자신 내면의 처절한 고민과 열정의 소산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예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표현과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감자님 내면에서 처절하게 고민하는 것 역시 감자님을 둘러싼 세상과 삶에 대한 것 아닌지요. 그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도 살고 있는 세상과 삶일 겁니다. 감자님이 스스로의 고민을 다른 사람과 나눈다면, 그것에 공감하거나, 의견을 좀 달리 하거나, 혹은 거부할 사람이 있겠지요. 그렇게 다른 사람과 나누고 상호작용하는 것이 바로 예술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은 그 어떤 것보다 그런 예술에 충실할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겠죠.
    기존의 예술 매체가 예술가가 독단적으로 보여주고, 들려주고, 너는 무조건 내 의도를 이해해라 하는 것 같지만, 그건 예술에 대한 오해(혹은 예술교육의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능동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 미신이겠죠. 많은 위대한 예술을 위대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받들고 숭배하라는 식으로 설파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예술에 빌붙어 권위를 행사하려는 사람들의 욕심입니다. (혹은 권력과 예술의 유착일 수도 있겠죠. 가까운 예로 일제시대나 독재시대처럼...) 모나리자 위대하다, 아! 내가 모나리자에서 뭘 어떻게 느끼든 모나리자는 위대한 거야......? 저는 예술은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비로소 존재를 인정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안 들면 거부하고 반항할 수도 있죠.
    게임이야말로 그것을 '직접'적으로 행하는 매체라고 봅니다. (물론 게임을 매체가 아니라고 하기도 합니다. 매체라는 단어에는 '나는 말한다, 너는 들어라'라는 뉘앙스가 짙게 깔려 있기도 하니까요.) 작가의 삶에 대한 생각을 '게임 시스템'이라는 구조로 디자인하고, 그 구조 속에서 플레이어가 플레이하며 반응하죠. 플레이어는 작가의 사상에 따라 플레이어의 사상을 도전받고, 플레이어는 자신의 사상에 따라 작가의 사상에 도전합니다. 게임은 예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소통의 성질이 예술 작품 내부에까지 능동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예라고 봅니다.

    흐흐, 남의 집에서 길게 떠들었는데, 예술사나 미학에 깊게 근거를 둔 생각은 아니고, 제 개인적인 생각이니, 잘 듣고 잘 흘려주세요 :)

  2. mrkwang 2010/03/04 12:40

    그런 의미에서 다음주 벤치마킹은 [우주 기린].

  3. 2010/07/04 18:59

    저는 예술은 뭐다 하고 바로 표현해 낼 수 있으면 그건 이미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예술이 내면의 타오르는 뭐를 어쩌니,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저쩌니...

    예술이란게 정말 그렇게 한 개인이 간단히 정의내릴 수 있는 그런 것일까요? 꼭 타오르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꼭 사회적 메세지를 담아야 하고, 그것만 충족시키면 '이거 예술임ㅇㅇ' 하고 낙인 찍을 수 있고...

    그렇다면 팝아트의 경우엔 전혀 예술이라 할 수 없지요. 내면의 고뇌니 사회의 소통이니 하는건 엿먹으라 하고 그저 돈되는 것만 찍어 파는 것이니까요. 한때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 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결국 팝아트는 시장주의에 굴복한 예술이라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종종 팝아트를 다다이즘과 비교하는 사람도 있는데, 다다이즘은 형식파괴를 통해 아카데미즘을 부정한 의식있는 흐름이었고, 팝아트는 그냥 돈되는것만 하려는 속물근성과 예술이란 허영이 기묘하게 뒤섞인 장르이니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앤디워홀부터 시작해 YBA를 거쳐 오늘날 무라카미 타카시까지 모두 '돈 되는 것' 만 하는 인간들입니다. 그 외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팝아트는 현재 모던아트의 주축이지요. 현대 예술을 이끄는 주된 테마입니다. 감자님의 의견에 따르면 팝아트는 절대 예술이 될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처절한 고민도 없고 내면의 뭣도 없으니까요. 그냥 돈 되는 것만 그럴싸하게 이쁘장하게 찍어내 팔아제낄 뿐입니다.


    결국 현대예술 비평이 입을모아 말하듯, '예술은 허세고 허영' 입니다. 그외엔 뭣도 없습니다. 이것저것 다 인수분해 해보면 남는건 '정신적 허영' 이란 자기만족 밖엔 없습니다.

    그러니 작가의 삶에 대한 생각이니 뭐니 거창하게 갈 필요 없이 그냥 모든 게임이 다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꼭 '예술게임' 이란 장르를 정해 허세부려야 예술이 되는게 아니라 하다못해 슈퍼마리오를 하면서도 그 안에서 뭔가를 찾고, 소장하고 싶어지면 그건 예술품이 된다고 봅니다.

    예컨대 '이 게임은 예술 게임이다' 하고 뭔가 거창하게 내놨는데, 사람들이 해보고 '재미없다' '이게뭐냐' 하면 그게 예술일까요. 아니면 슈퍼마리오를 하면서 어린시절 텀블링 위에서 뛰놀던 노스텔지어를 느끼는게 예술일까요. 그렇다고 미야모토 시게루가 꼭 뭔가를 의도하고 슈퍼마리오를 만든건 아닙니다. 그냥 플레이 한 개인이 그렇게 느끼는거지요.


    현재 전세계의 수많은 자칭 아트게임 개발자라는 사람들이 모두 '아트게임' 이란 형식적 틀에 자신의 게임을 포함시키려는 이유는 다 '자기 게임에 자신이 없어서' 라고 봅니다. 딱히 기성게임과 비교해 경쟁력 있을만큼 재미있지도 않으면서 뭔가 그럴듯한건 표현해보고싶고 하니까 아트게임이란 그럴싸한 타이틀 갖다 붙여놓고 '이건 보통게임이 아니니 뭔가 느끼시오' 하는게 아닐까요.

    정말 아트가 하고싶고 '예술적 게임' 을 만들고싶다면, 그냥 기성게임과 경쟁하면 됩니다. 미술작가가 만화가나 광고포스터 아티스트와 경쟁하지 않듯, 그냥 묵묵히 캔버스에 붓 찍어바르고 밖에 내놓으면 됩니다. 그게 예술적인것 같으면 알아서 예술게임이라 해줄 것이고, 이도저도 아닌 껍데기인것 같다 하면 그대로 묻힐것이고, 결국 시장이 판단할거라 봅니다.

  4. 감자 2010/07/06 01:07

    좋은 의견들 감사합니다. 예술 역시 그것을 향유하는 소비자가 존재해야 하는 것 처럼, 게임 역시 유저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존재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저가 '플레이'하지 않는 게임은 이미 게임이라고 볼 수가 없을 테니까요. 이건 어떻게 보면 슬픈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설령 그것이 허영이나 허세일지언정, '표현' 자체를 위한 게임의 존재가치를 부정해버리는 게 되니까요.

    얼마전, 지금까지 제가 만든 게임들은 유저의 플레이를 바라보고 만든 것이 아니라,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게임들이 아니었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피그민 에이전시에서도 항상 '당신의 게임은 너무 유저와 동떨어져있다.' 라는 말을 하죠. 앞으로 만들 게임은 그것을 즐기는 유저와 좀 더 가까워야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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