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틀 크림이 만들어지기 전에 만들었던 아이리스 때부터,
그리고 공개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3D 슈팅게임 프로젝트도,
터틀 크림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선보인 찢어붙이기에 이르기까지,
저는 지금껏 유저가 좋아하는 게임이 아닌, '제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찢어붙이기를 진행하고 있는 내내 pig-min agnecy 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죠. 흑. 저는 지금껏 유저의 편의 보다는 저의 의도를 생각했고, 게임의 재미보다는 저 자신의 표현에 신경썼습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찢어붙이기, 재미 없다.' 라는 평을 찾게 되면 혼자 울컥 하기도 했고요.
이전에 썼던 글들에서 몇번이나 언급했듯이 저는 게임으로써 예술을 하고 싶습니다. 본디 예술이란 자신의 세계를 꺼내놓는 행위 입니다. 자신 안에서의 처절한 고민과 이를 연료삼아 타오르는 열정의 소산이 바로 예술입니다. 이렇게 게임을 예술을 보듯 바라보는 저에게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는 것은 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이 플레이 하기 위해서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술로써의 게임은 플레이로 일컬어지는 다른 이들과의 소통으로써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껏 저는 제가 가지고 놀 신기한 장난감 정도를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다른 스튜디오와 비교했을 때, 터틀 크림의 색깔은 새로움과 참신함 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터틀 크림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게임들은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게임'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사람도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이제 막 개발을 시작하게 되는 'Sugar Cube (가제)'가 그 첫걸음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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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자신 내면의 처절한 고민과 열정의 소산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예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표현과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감자님 내면에서 처절하게 고민하는 것 역시 감자님을 둘러싼 세상과 삶에 대한 것 아닌지요. 그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도 살고 있는 세상과 삶일 겁니다. 감자님이 스스로의 고민을 다른 사람과 나눈다면, 그것에 공감하거나, 의견을 좀 달리 하거나, 혹은 거부할 사람이 있겠지요. 그렇게 다른 사람과 나누고 상호작용하는 것이 바로 예술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은 그 어떤 것보다 그런 예술에 충실할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겠죠.
기존의 예술 매체가 예술가가 독단적으로 보여주고, 들려주고, 너는 무조건 내 의도를 이해해라 하는 것 같지만, 그건 예술에 대한 오해(혹은 예술교육의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능동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 미신이겠죠. 많은 위대한 예술을 위대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받들고 숭배하라는 식으로 설파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예술에 빌붙어 권위를 행사하려는 사람들의 욕심입니다. (혹은 권력과 예술의 유착일 수도 있겠죠. 가까운 예로 일제시대나 독재시대처럼...) 모나리자 위대하다, 아! 내가 모나리자에서 뭘 어떻게 느끼든 모나리자는 위대한 거야......? 저는 예술은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비로소 존재를 인정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안 들면 거부하고 반항할 수도 있죠.
게임이야말로 그것을 '직접'적으로 행하는 매체라고 봅니다. (물론 게임을 매체가 아니라고 하기도 합니다. 매체라는 단어에는 '나는 말한다, 너는 들어라'라는 뉘앙스가 짙게 깔려 있기도 하니까요.) 작가의 삶에 대한 생각을 '게임 시스템'이라는 구조로 디자인하고, 그 구조 속에서 플레이어가 플레이하며 반응하죠. 플레이어는 작가의 사상에 따라 플레이어의 사상을 도전받고, 플레이어는 자신의 사상에 따라 작가의 사상에 도전합니다. 게임은 예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소통의 성질이 예술 작품 내부에까지 능동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예라고 봅니다.
흐흐, 남의 집에서 길게 떠들었는데, 예술사나 미학에 깊게 근거를 둔 생각은 아니고, 제 개인적인 생각이니, 잘 듣고 잘 흘려주세요 :)
그런 의미에서 다음주 벤치마킹은 [우주 기린].